.....1994년 봄의 어느 날.....

Posted 2024. 12. 13. 00:00 by 푸른비수 [BLACKDIA]

[1996/03/13 23:23]

입학을 하고 얼마 후의 일이었다.....
오전 강의가 끝나고...2시간의 공강을 어떻게 보낼까...생각하는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겨울이 아닌...봄의 눈.....
아무런 생각없이...무작정...학교를 내려가는데.....
동기 한명과...마주쳤다.....
90명인 우리과는...3개 반으로 분반되어 있었는데.....
공강 시간인 나와는 달리...그 동기는 수업을 들으러 가는 길이었다.....

"...수업 끝났어...?..."
"...응...우린 이제 두시간 공강이야..."
"...밖에 나갔다 올려고...?..."
"...눈 오는데...학교에 있는 거 싫어서..."
"...혼자서...?..."
"...아직...다들 서먹하니까...그리고...혼자가 편하기도 하고..."
"...혼자서 돌아다니긴...같이 가자..."
"...넌 수업 들어가야지..."

좀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아무런 생각없이...걸을 수 있었다.....
갈림길이 나와도...어느 쪽으로 갈까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예쁜 까페가 나와도...들어갈까 말까 망설이지 않아도 되고.....
이미 학교 근처를...돌아보았다는...그 동기에게 이끌려.....
예쁜 까페도 구경하고.....
창가에서...나리는 눈을 보며...따뜻한 커피도 마시고.....
눈을 맞으며...같이 걸어보기도 하고.....

아마도...그 동기와 인사 아닌 이야기를 나눈 것은.....
그 날이 처음이었던 거 같다.....
특별히...눈에 띄는 타입도 아니었고.....
그렇다고...나와 잘 지내던 동기도 아니었고.....

그저...눈 오는 날에...우연히 마주쳐서.....
그리고...몇시간을 같이 보낼 수 있었던 것.....
솔직히 지금 생각해보면...조금은...이상하게도 여겨진다.....

그렇게 쉽게 같이 가겠다 말했던 동기도...그냥...쉽게 동의했던 나도.....

한학기의 시간동안.....
그 동기와 나는.....
그렇게 친하지도 않게...그냥...평범한...동기 사이를 유지했다.....
그 날의 기억과.....
언젠가...이야기 좀 하고 싶다고 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들어준 기억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오늘같은...날이면...가끔...그 동기가...생각이 난다.....

나는...눈이 오는 날이면...그런 사람이 있었으면 한다.....

몇시간 이고.....
내 대답을 의식하지 않고...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
길을 걸으며...어디로 갈까를 묻지 않는 사람.....
까페에 들어가...향 좋은 커피를 골라 줄 수 있는 사람.....
우울한...나를...애써...위로하려 하지 않는 사람.....
그저...곁에 있어서.....
내가...혼자가 아니라는..그런 느낌만을...남길 수 있는 사람.....

나는...때때로.....
생각없이 보내고 싶은 시간이 있다.....
목적지를 모르고 걷고 싶은 시간이 있다.....
무엇을 해야 할까...생각하고 싶지 않는 시간이 있다.....
누구와 함께 있어야 할지...선택하고 싶지 않은 시간이 있다.....
그런 시간이면.....
그 누군가가 아닌...그냥...누군가가 그립다.....
그저......



..... 나는 언제나 기다린다 ... 기약없는 회귀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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